EP 1. 옥의 티, 밝은 콩, 퀘이커


유난히 밝은 콩을 본 적 있으신가요?

처음 로스팅을 했을 때 갈색 원두들 사이로 보이는 밝은 원두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골고루 커피를 볶았다면 콩의 색깔이 균일하게 갈색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죠. 당연히 밝은 콩에는 열이 가지 않아서 덜 익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요, 사실 이런 콩은 ‘퀘이커Quaker’라고 부릅니다. 퀘이커는 자체의 품질에 문제가 있는 생두에요. 로스팅된 콩의 색깔이 균일하지 않았던 건 생두가 골고루 익지 않아 생긴 문제가 아니었던 거죠.

 

일반적으로 하자가 있는 생두는 로스팅을 하기 전에 직접 눈으로 보고 골라낼 수 있어요. 썩은 생두, 까만 생두, 깨진 생두, 곤충이 파먹은 생두들을 빼냅니다. 커피를 재배하는 농장에서 자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생두를 골라낸 뒤 한국으로 보내는 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인얼스커피는 생두가 들어오면 포대를 열어 전반적으로 한번씩 체크를 합니다. 농장에서부터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세심하게 관리한 생두는 그만큼 가격도 비쌉니다.  

하지만 생두 상태에서는 도저히 골라낼 수 없는 아이가 있는데요, 그게 바로 퀘이커입니다. 로스팅하고 나서야 발견할 수 있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유난히 색이 밝은 아이들이죠. 정말 다행인 건 색깔이 달라서 쉽게 골라낼 수 있다는 점! 



밝은 콩을 골라내기

인얼스커피의 원두 중 더 초코 블렌딩은 기계를 사용해 퀘이커를 골라냅니다. 일일히 손으로 빼내는 대신, 색채 선별기라고 불리는 기계가 어두운 갈색 콩들 중 밝은 것들을 쉽게 골라줍니다. 하지만 더 하우스 블렌딩과 로스팅을 약하게 하는 싱글 오리진 원두는 원두 색상이 밝기 때문에 색채 선별기가 좋은 원두와 나쁜 원두를 구분하지 못해요. 그래서 기계보다 나은 사람의 눈과 손으로 하나하나 골라내야 합니다. 물론 퀘이커가 없는 생두, 농장에서 퀘이커를 제거한 생두를 구매할 수도 있겠죠. 그렇더라도 퀘이커가 100% 없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은 모든 게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테이블에 앉아 눈으로 밝은 콩을 골라내는데, 하다 보면 허리가 아파져 와요.



불쾌한 나무 향과 기분 나쁜 쓴맛이 나는 퀘이커

퀘이커 선별은 인얼스커피 낸데유(대표)님께서 가장 중요하다고 늘 강조하시는 작업이기도 해요. 저희가 이렇게 퀘이커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퀘이커 한 알이 소중한 커피 한 잔을 망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한데 모은 퀘이커를 갈아서 냄새를 맡아 보면, 말린 고추와 오래된 곡식에서 나는 향이 올라옵니다. 매콤한 향신료 같기도 하고, 곡물의 껍질 향도 나서 누군가는 고소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어요. 뜨거운 물로 우려내 마셔도 보았습니다. 



다신 먹고 싶지 않은 맛이네요. (퀘이커의 맛이 궁금하시다면 말리진 않겠어요. 경험하지 않으셔도 좋을 맛이지만 원하시면 모아서 보내드릴 수도 있어요..!)

퀘이커에선 아무 맛도 나지 않아요. 커피에서 기대할 수 있는 좋은 신맛과 단맛 자체가 없습니다. 지푸라기가 생각나는 쓴맛이 나네요. 예를 들어, 향긋한 복숭아 향이 인상적인 에티오피아 커피에 퀘이커 한 알이 들어간다고 상상해보세요. 오래된 창고에서 썩고 있는 복숭아가 될 것 같지 않나요? 



그래서, 퀘이커는 골라내서 드세요!

분명히 퀘이커를 골라내는 건 어렵습니다. 저희도 하다 보면 수많은 퀘이커들 중 한두 알은 놓치게 되죠. 사람이 하는 일이라 100% 완벽하지 못해 슬플 따름이에요. 그래도 퀘이커가 얼마나 맛이 없는지는 잘 알아요. 그래서 저희는 오늘도 눈과 손으로 퀘이커를 골라냅니다. 만약 원두를 샀는데, 혹시 밝은 콩 한 알이 보인다면 ‘아! 이건 사람이 일일이 골라내는 거였지!’라는 마음으로 빼내고 드셔 주세요. 오늘 하루 내가 먹는 원두를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written by 팅유(바리스타)